한 시간 생활권
나는 영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.
버스가 다니긴 했지만, 나는 걷는 걸 좋아했다.
유치원까지는 일 분.
초등학교까지는 십 분.
홈플러스까지도 십 분.
중학교까지는 사십 분.
고등학교까지는 한 시간.
꽤 단순한 세계였다.
한 시간만 걸으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.
물론 여기서 어디든이라는 말은 영주 안에서만 유효하다.
세계는 넓고, 나의 세계는 적당히 작았다.
그 시절의 한 시간은 이동의 단위였다.
몸을 움직이면 장소가 바뀌었고, 장소가 바뀌면 하루도 조금은 바뀌었다.
한 시간은 꽤 정직했다.
내가 걸은 만큼만 나를 데려다주었다.
대학교를 나오고, 여러 지역에 살아보면서 알게 된 건 조금 달랐다.
이제는 원하는 곳에 가기 위해 버스로 한 시간이 걸린다.
예전에는 한 시간을 걸으면 어디든 갔는데, 이제는 한 시간을 앉아 있어야 겨우 어딘가에 도착한다.
이건 걸어서 한 시간 생활권에 익숙했던 나를 꽤 피곤하게 했다.
창밖을 보는 것도 십 분이 한계다.
나머지 오십 분은 이어폰과 작은 화면이 가져간다.
그렇게 도착한 곳에서도 몸은 아직 버스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.
내 시간인데, 어쩐지 내가 운전한 시간은 아니었다.
그래서인지 가만히 있는 한 시간도 자주 남의 것처럼 느껴졌다.
한 시간을 잘 쓰고 싶었다.
커피를 마시고, 노트북을 열고, 무언가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.
준비는 늘 성실하다.
문제는 내가 대체로 그다음 순서에 약하다는 것이다.
한 시간은 생각보다 길고, 생각보다 짧다.
운동을 하면 꽤 긴 시간이고, 유튜브를 보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처럼 사라진다.
공부를 하면 조금 비협조적으로 늘어나고, 잠을 자면 누군가 조용히 훔쳐 간 것처럼 사라진다.
흥미로운 점은, 한 시간은 늘 육십 분이라는 것이다.
과학적으로는 사실이고, 체감상으로는 사기다.
시계를 보니 한 시였다.
나는 한 시간을 보낸 줄 알았다.
정확히는 그냥 한 시가 된 것이었다.
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, 시간은 자기 일을 했다.
늘 그렇듯, 시간 쪽이 더 프로다.